남평문씨 본리세거지 (南平文氏本里世居地) - 남평문씨 인흥세거지
일시 : 2014년 4월 2일
위치 : 대구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3호)
문익점의 18대손 문경호가 터를 닦아 남평 문씨 일족이 모여 살던 곳이다. 원래 절이 있던 명당터를 구획하여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집을 지었다. 지금은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9채와 정자 2채가 남아 있으며, 도로에 접한 부분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다.
이곳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수봉정사와 광지당·인수문고를 들 수 있다. 수봉정사는 세거지의 입구에 있는 정자로 정원을 매우 아름답게 꾸민 곳이다. 주로 손님을 맞고 일족의 모임을 열 때 사용하던 큰 규모의 건물이다. 광지당은 문중의 자제들이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이다. 또 인수문고는 문중의 서고로, 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책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으나 후에 크게 늘려지었고, 도서열람을 위한 건물도 따로 지어놓았다.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도로망도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는 옛 마을이다.(글:문화재청)
남평문씨 본리(인흥)세거지는 옛 인흥사 절터에 형성된 민속마을이다. 인흥사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스님이 1264년에 포항 오어사에서 옮겨와 중창한 사찰인데, 임진왜란 때 전부 소실된 바 있다. 19세기 중반 인산재 문경호(1812~1874)가 지금의 광거당 자리에 용호재를 건립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1910~1940년경에 남평문씨 일가의 살림집(9호)와 재실 등이 건립되면서 거의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곳의 대표적 건물로는 목조건물의 독특한 조형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광거당과 수봉정사를 들 수 있다. 마을 전면에 위치하고 있는 수봉정사는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일족이 모임을 갖던 곳으로 당시 생산된 춘양목을 잘 활용하여 민족의 정신을 간직하고자 규모가 크게 지어졌다. 광거당은 자제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학의 장소였다. 또한 세거지 내 수봉정사 옆에 자리한 인수문고는 질적·양적인 면에서 그 유례가 드문 문중문고로 국내외 2만여권의 서책과 책판이 거의 변질 없이 보관되어 있다.
본 세거지는 20세기초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근대화를 지향했던 철학이 엿보이는 곳으로 기존의 전통마을의 풍수지리적 정서와 민속적인 풍습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배산향천의 조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평지에 위치하여 농경생활을 근대화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주거유형들은 대부분 평면상 ㅡ자형이고 그 배치는 튼 ㅁ자, 튼 ㄷ자, 튼 곱자와 二자형 배치가 나타나며 가구형식은 3량식이 주가되고 구법상의 정형을 잃지 않고 있다.
마을의 조성시기와 그 규모나 형태면에서 기존의 민속마을과는 차별화가 되며, 문중의 정신적 유산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정형성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주거공간의 근대적 변용현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글:달성군청)
화원읍 본리리에는 문익점의 18세손 문경호가 터를 닦고 건설한 남평문씨 본리세거지가 자리잡고 있다. 그 옛마을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건물로 광거당과 수봉정사, 인수문고를 들 수 있다. 광거당은 문중의 자제들을 위한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학장소로 쓰였고, 수봉정사는 입구에 있는 정자로 손님을 맞을 때나 문중의 모임을 열 때 주로 쓰는 건물이다. 문중서고인 인수문고는 국내외 1만여 권의 전적을 소장하고 있으며, 도서열람실인 서사와 보조서고도 꾸며 놓았다.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도로망도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어 가볍게 다녀오기에 좋은 곳이다.
<좀 더 알아보기>
월배에서 화원초등학교를 지난 다음 천내교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굽어 들어가 천내천을 따라 3km정도 가면 왼쪽으로 한옥이 많이 보이는 곳이 인흥마을이며 바로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이다.
주택들은 산 밑의 양지바르고 아늑한 장소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천내천이 흐르고 있어 명당의 기본적인 요건인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마을이다.
마을은 주택 9호, 재실 2채, 문고 1개소 등 크고 작은 60여채의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남평문씨는 목화씨를 들여온 고려시대의 충신 문익점이 증시조이다. 남평문씨가 대구에 입향한 것은 대체로 500여년전으로 추정되며 이곳 인흥에 터를 잡은 것은 문익점의 18세손인 인산재(仁山齋) 문경호(1812∼1874) 때이다.
그는 문씨만의 마을을 만들 것을 계획하고 원래 절이 있었던 명당터인 이곳에 정전법에 따라 구획을 정하여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한 뒤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였다. 세거지에서 최초로 건립한 건물은 용호재(1834년)로서 현재의 광거당이 있는 곳이었다.
주택이 들어선 것은 1856년으로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1873년 이후에는 모두 와가로 지어지게 되었다.
마을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인 수봉정사(壽峰精舍)는 세거지 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초 수봉선생이 돌아가신 후 그의 뜻을 기리기위해 1936년 지은 건물이며 광거당(廣居堂)은 1910년 용호재터에 접객과 자제들의 학덕 증진을 목적으로 건립한 건물이다.
서고인 인수문고는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1만여권의 책을 수집하여 보관하던 건물로 옆에는 도서의 열람을 위한 건물도 배치하였다.
이곳 세거지는 건축연대가 200년 미만이나 전통적인 영남지방의 양반가옥의 틀을 지키고 있으며 오늘날의 도시계획처럼 도로망이 정비되어 있는 등 주위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마을을 구성한 예 또한 희소하여 큰 의의를 갖고 있다.
1975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3호로 지정되었는데 대구로 편입되면서 대구민속자료 제 3호로 재지정되었다.(글:대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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