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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두류공원)

한 글 2014. 8. 15. 14:19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촬영일시 : 2014년 8월 15일
촬영장소: 대구시 달서구 두류3동 588-2  두류공원 인물동산
              대구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36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먼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웁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기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리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을 걷는다.

아마도 봅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李相和)의 시.

 

1926년 《개벽(開闢)》지(誌) 6월호에 발표하였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절실하고 소박한 감정으로 노래하고 있는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첫 연 첫 행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구절이라 하겠다.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과 저항을 노래한 몇 안 되는 시 가운데서도 이 시가 특히 잘 알려진 이유는 그 제목과 첫 연 첫 행의 구절이 매우 함축성 있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의 절약(節約) 속에 최대의 예술이 있다"라는 좋은 표본이 된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