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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락서당

한 글 2020. 11. 16. 18:58

이락서당(伊洛書堂)

일시 : 2020년 11월  13일
장소 : 대구 달서구 파호동, 강창교에서 촬영
카메라 : 캐논 eos 700d(캐논 700d, EF-S 18-135mm F3.5-5.6 IS STM)

 

조선 중기의 학자인 한강() 정구(, 1543~1620)와 낙재() 서사원( 1550~ 1615)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22년(1798)에 건립한 강학소()이다.

정조가 등극하면서 탕평책을 쓰고 학문을 숭상하는 기풍이 일어나자 당시 대구와 달성, 칠곡 등지의 명문가 유생 30명이 뜻을 모아 세운 후 인재 양성과 예학() 숭상을 위한 사숙()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락서당 건립에 참여한 문중은 모두 아홉 문중으로, 성주도씨·광주()이씨·함안조씨·밀양박씨·전의이씨·일직손씨·순천박씨·달성서씨·광주()이씨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9문 11향 30군자라 한다.

한강 정구는 창녕현감·지평·승지·관찰사를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고, 증이조판서와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경학·산수·의약·풍수에 정통하였고, 특히 예학에 밝았으며 대문장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낙재 서사원은 정구의 제자로, 주자학 및 이황의 문집을 깊이 연구하고,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임진왜란 때 대구 지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팔공산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락서원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일명 강창()이라는 곳에 있으며, 방 2칸·대청 2칸의 구조로 누각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건물 전면에는 이락서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경미재()와 모한당()이라 쓰인 현판도 있었으나 2006년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락이라는 이름은 강창 지역을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주자의 <이락연원록()>에서 유래한 이름이기도 한데, 유학의 중흥지 또는 성리학 그 자체를 의미한다. 현재 이락서당보존회가 구성되어 보존·관리한다.(글:네이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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