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선의 초록희망]이명박 대통령의 기회와 용기
이명박 대통령의 기회와 용기
지난 주말, 내성천이 360도 휘감아 흐르는 회룡포를 시작으로, ‘낙동 제1경’이라는 경천대를 거쳐, 낙동강에 시공중인 9개 보 가운데 하나인 상주보 건설현장을 둘러보았다.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4대강 공사로 어쩌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를 낙동강의 본래 모습을 기억에 나마 담아두기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공사가 이미 30%나 진척되어 되돌리기 어렵다는 주장을 현장에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회룡포는 내성천이 낙동강으로 합류하기 직전 산줄기에 막혀 둥그렇게 휘돌아 흐르며 만들어낸 육지 속 섬마을이다. 산언덕의 진초록 녹음과 맑은 강물, 흰 모래에 둘러싸인 마을이 속세를 떠난 듯 조용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의 일부인 영주댐이 건설되고 나면 모래의 유입이 줄어, 드라마 ‘가을동화’의 무대였던 이 풍경은 차츰 흰 모래사장을 잃게 되리라 한다.
바위 절벽과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강물과 모래톱이 일품인 경천대는 명성에 어울리는 관광지로 단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 모래톱은 아예 10m 깊이로 준설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최대의 이유가 막가파식 4대강 사업을 비롯한 독단적 국정운영이라는 데 이론을 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만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모양이다. 14일 라디오 연설에서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변함없는 ‘소신’을 피력했다.
4대강 공사를 가리켜 전형적인 ‘토건족들의 먹튀 사업’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설사 대통령의 소신을 순수하게 믿는다 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복원인가 파괴인가’라는 특집기사에서 ‘사이언스’지가 지적했듯, 4대강 사업은 선진국의 하천관리 방식과는 거리가 먼,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토건개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CEO가 아니라 대통령
경천대에서 5km 하류 지점에서 상주보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강물을 걸러주던 넓은 모래사장은 이미 다 파헤쳐졌고, 수문을 설치할 3개의 육중한 콘크리트 교각이 10여m 높이로 솟아 있다. 공사안내판의 조감도에 따르면, 강폭의 2/3 정도를 보로 막고 나머지 1/3엔 2개의 수문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이른바 가동보다.
토목공학자 박창근 교수(관동대)는 수문을 열어 퇴적오염물질을 흘려보낼 수 있지만, 보로 막힌 부분은 유속이 느려지고 오염물질이 퇴적될 수밖에 없다며, 그걸 준설하는 데 연 100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갈 거라고 한다. 16개 보 준설에 매년 1600억원이 들어가리라는 설명이다.
4대강 사업 예산 22조에는 물론 이런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박 교수는 또 홍수 때 수문을 열어도 보와 교각들로 물의 흐름이 지체돼 홍수위가 30cm 이상 더 높아진다며, 홍수 예방을 위해 보를 만든다는 논리에 의문을 표시했다.
일행들의 마지막 질문은 하나로 모아졌다. 이미 진행된 공사를 중단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박 교수의 대답은 명쾌했다. “물론 낭비가 따르지만, 이제라도 중단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이미 세워진 교각을 이용해 교량을 설치하거나, 둘째 교각을 그대로 두고 역사의 유물로 삼거나, 셋째 교각을 철거할 수 있다. 모두 토목적으로 어렵지 않다.”
물론, 자신이 역점을 두어 추진하던 사업을 방향전환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당신은 기업의 CEO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은 목표 달성이 지상과제인 CEO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위임받아 수행하는 대통령이다. 그것도 일부 계층의 대통령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대통령이다.
국민 뜻 따르는 게 진정한 용기
지금은 이 대통령이 부닥친 난관을 돌파하고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최대의 기회다. 국민의 뜻이 확인된 지금, 그 뜻에 따라 국정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마땅하고도 용기 있는 결단이다.
이제 곧 닥쳐올 홍수기에는 4대강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그 시간에 국민의 뜻과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 ‘진짜 강 살리기’의 길을 찾으라. 흐르는 강을 막고, 처치할 길 없는 준설토를 파내는 대신, 오염원을 차단하고 강의 자정기능을 키울 계획을 세우라. 당신의 진정한 용기에 민심과 역사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언론인·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출처 : http://www.naeil.com/News/economy/ViewNews.asp?nnum=550612&sid=E&ti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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