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학교 민속촌
일시 : 2014년 4월 19일
위치 : 경북 경산시 대학로 280
경북 경산시 대동 214-1
영남대학교 민속촌
1975년, 교내부지 2만여평 위에 조성된 민속촌은 아시아에서 최초일뿐 아니라 가장 큰 대학야외박물관이다.
민속촌에는 안동수몰지역과 경주, 칠곡에서 옮겨온 옛집들과 경주 인왕동 고분군 복원지가 있다.
민속촌에는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중의 하나였던 구계서원과 화산서당, 진보현감을 지낸 이중철이 건립했던 의인정사, 의성 김씨 정려문,선비들의 외별당인 일휴당과 쌍송정 그리고 경주 황룡사지에 있었던 경주 맞배집과 안동군 도목동에서 옮겨온 까치구멍집이 있다.
민속촌으로 옮겨온 옛집들은 조선시대의 여러 계층의 집 생활문화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두루 보여준다.
구계서원(龜溪書院)
고려 말 유학자인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을 모시기 위해 1696년(숙종22년)에 건립한 서원이다. 원래 안동군 월곡면 미질동에 있었으나, 미질동이 안동댐 건설로 수몰됨에 따라 1974년 6월 말 서원을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무상 증여하였다. 1975년 현재의 위치인 영남대학교 민속원으로 이건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 하였다가 구계서원으로 개칭되었다. 구계서원으로 개칭한 정확한 시기와 이유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1871년(고종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896년 9월 17일에 후손과 사림이 당회를 열어 공의(公議)로써 강당만 다시 지어 1897년에 완공하고 독역재(讀易齋)라 이름 붙였다. 이건 당시에는 독역재 밖에 없었으나, 2000년 11월에 묘우(廟宇)인 묘현사(墓賢祠), 내삼문, 동·서재인 일신재와 시습재, 대문인 진덕문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문인 진덕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강당인 독역재가 정면에 자리잡고 있으며, 강당의 전면 좌 우측에 동서재인 일신재와 시습재가 각각 자리잡고 있다.
강당의 뒤에는 내삼문을 세웠으며,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묘현사가 자리잡고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에 있다. (글:두산백과)
화산서당 (花山書堂)
만회당 장경우(1581∼1656)가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효종 2년(1651)에 세운 건물이다.
장경우는 조선 중기 학자로 정묘호란 때 인동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여헌문집』, 『만회당집』 등의 저서를 남긴 분이다.
화산서당은 원래 석적읍 성곡리에 있었으나, 사림의 여러 의견에 따라 헌종 6년(1840)에 석적읍 중리에 옮겨 세웠다. 이 때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건물을 새로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 해체되어 지금은 강당과 양예청만 남아 있다. 후에 문화재 관리를 위하여 2009년 영남대학교(경북 경산시 갑제동 271 등)의 지금 있는 자리에 옮겨 세웠다.
강당은 규모가 앞면 5칸·옆면 3칸이다. 가운데에 개방된 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둔 형태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의 처마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데, 우리나라 전통가옥 지붕에서 볼 수 있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글:문화재청)
동영상(2014년 4월 29일) 수정으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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