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룡포 주변 볼거리
회룡포(回龍浦)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명승 제16호
회룡포(回龍浦)(혹은 의성포라고도 함)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龍)의 비상처럼 물을 휘감아 돌아가는(回) 지형의 "육지 속의 섬 마을(浦)"이다.
높이 190m의 비룡산을 다시 350° 되돌아서 흘러 나가며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최근 KBS TV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초기무대가 이곳 회룡포와 용궁면 소재지를 배경으로 촬영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적 정취가 살아 숨쉬는 이 곳 회룡포 백사장과 비룡산은 야영과 민박이 가능하다.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틀임을 하는 듯한 특이한 지형의 회룡포는 한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마을로서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이곳은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인근 비룡산에는 숲속 등산로와 원산성, 봉수대 등 역사적 정취가 숨쉬는 자연공원으로 산책과 등산코스로 적합하다. 또한 이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운명선사가 세운 천년고찰 장안사가 산중턱에 있으며 이 사찰의 뒷산에 올라가면 팔각정의 전망대가 있어 의성포(회룡포)마을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다 보인다.
2000년도에 방영되었던 KBS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초기배경이 이곳 회룡포와 용궁면 소재지로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무이리 청원정
소재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 379번지
문화재지정보호 제533호
청원정은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국파 전원발(1288~미상)이 환국했을 때 원나라 원제에 조공을 감면케 한 공로로 축산부원군에 봉군되고 지금의 소천강 일대를 하사받아 청원정을 창건 했다고 전한다.
척약재 김구용(1338~1384)선생이 쓴 ‘청원정’이라는 글씨가 현 청원정 옆 암벽에 음각되어 있어 이를 청원정의 창건 근거로 전해 오고 있으며, 임란 때 소실되었다가 1918년 복원되었다.
청원정의 평면은 一字형으로 1칸 규모의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측에 마루방을 각각 1칸씩 두고 전면에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상부는 후면 평주와 내진주 사이에 대량을 걸고 내진주와 툇마루 전면의 평주 사이는 주두 위에 퇴량을 걸었다.
청원정은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온돌 양협 칸에 마루를 둔 건축 평면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정자건축에 있어서 건축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으며, 청원정에 보존되어 있는 청원정중수기, 청원정중수상량문, 퇴계의 시문, 성화천 동안의 금석문(청원정, 국파전선생) 등은 당시 연구에 좋은 자료 임.
향석리 석조여래좌상
소재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190번지
문화재지정보호 : 문화재자료 147호
나발의 머리에는 큰 육계가 있고 얼굴은 둥근 편이다. 눈은 반쯤 감았고 코는 보완하였으며, 특히 귀는 뒤로 치우쳐 나타내고 있다. 우견편단한 법의의 옷주름은 평행선으로 나타냈다. 수인은 항마촉 지인이고 무릎은 높고 넓어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장방형 상대석에 새겨진 화판은 중앙의 것은 정면하고 있으며 좌우로 갈수록 비껴지게 만들어 고려시대 연화문 처리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양식상 고려시대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덕계리 관물당
소재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덕계리 273번지
문화재지정보호 : 문화재자료 465호
관물당은 학문과 휴양을 위해 16세기 중반에 건립된 건물로서 지금의 모습이 창건 당시의 모습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세기 양식으로 볼 수 있는 평면형식과 고졸한 토머름 등으로 미루어 보아 건립 당시의 모습이 큰 변화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무이서당
소재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 423-1번지
문화재지정보호 시도유형문화재 231호
이 서당은 용궁면 무이리 내무마을에 있다. '서당기(書堂記)' 에 의하면 이 건물은 여주이씨 시조인 태사공 이인덕의 20세손인 이지섬과 21세존인 이식이 조선 숙종 36년(1710)에 후손들에게 면학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세운 서당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중앙은 앞면이 개방된 2칸은 우물마루로 되고, 좌우 협칸은 온돌방으로 꾸몄다.
자연석 기단 위에 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는 초익공을 꾸미었다. 대청 상부는 5량가로, 동자기둥을 세워 2중량을 올리고, 사다리형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치었다. 서당 뒤편에는 여주이씨 무이입향조이며 승사랑으로 한성부우윤에 증직된 창암 이윤수(1545년∼11594년)선생을 봉향키 위해 세운 사당이 있다.
금남리의 황목근
소재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번지
문화재지정보호 천연기념물 제400호
황목근은 팽나무이다. 팽나무는 평지에서 자라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잎은 호생하며, 난형 또는 긴타원형이고 끝이 날카롭다. 잎 길이는 4-11㎝로서 상반부에 거치가 있고 표면이 거칠며 엽병은 2-12mm로 털이 있다. 꽃은 연한 황색으로 5월에 피며 수꽃은 취산화서이고 암꽃은 액출한다. 과실은 핵과로서 지름 7-8mm의 구형(球形)으로 10월에 홍갈색으로 익는다.
금원마을에는 황목근과 관련된 기록이 1903년부터 전해 오는데 1903년의 금원계안 회의록, 1925년의 저축구조계안 임원록 등이 전수되고 있다.
.「황목근」이라는 이름은 1939년 마을에서 마을 공동 재산인 토지를 이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을 하면서부터 유래되었다고 전하는데, 팽나무가 5월에 황색 꽃을 피운다는 뜻을 따 「황(黃)」이란 성과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황목근은 현재 12,232㎡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약 100여 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성미를 모아 마련한 마을의 공동재산을 이 나무에게 등기 이전하여 모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황목근은 토지를 소유하며 세금을 내는 나무가 되었다. 실제로 1996년의 경우 8,240원의 세금을, 1998년에는 10,440원의 세금을 납부하였다.
현재 황목근은 금원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이자 당산나무로 매년 정월 대보름 자정에 제관과 축관을 선정하여 당제를 올리며 다음날 온 마을 주민이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인다.
또 7월 백중날은 마을 전 주민이 나무 아래에 모여 잔치를 벌이며, 농사일로 지친 심신(心身)의 피로를 풀고 나무를 보살핀다. .
장안사
소재지 : 용궁면 향석리
삼계(三界)는 유심(唯心)이요 만법(萬法)은 유식(唯識)이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으니, 금강산과 양산 그리고 이곳 국토의 중간인 용궁 비룡산 장안사이다.
초창주는 신라 경덕왕때(759) 운명조사 이시며, 그 후 고려 명종때의 지도림 화상, 조선 인조 5년(1627) 덕잠대사, 영조 31년(1755) 법림대사 등 고승 대덕들이 주석하시면서 중창하셨다.
근래에는 두타화상(頭咤和尙)이 약관의 나이로 수행정진차 전국을 행각 하던중 사세(寺勢)의 퇴락함을 보고 이곳 지역 신도들과 힘을 모아 오늘의 가람을 일으켰으니(1984~1992), 이는 불자들의 간절한 원력의 소산이라.
일찌기 고려의 문인 이규보선생이 장안사에 머무르면서 글을 지었으며, 또한 지역의 많은 인물들이 이 도량에서 원(願)을 성취하고 밖으로 역량을 발휘하기도한 유서깊은 도량이다.
현재 본당(本堂)은 대웅전이며 석가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과거에는 본당이 극락전이었으며 아미타삼존불을 모셨었다.
비룡산
소재지 : 용궁면 향석리 산 54
원산성이 있는 주산, 기록에는 비룡산이다. 높이 189m, 용이 나는 형국이라 한다. 원산성은 성벽의 둘레가 1,000여 미터이며 성벽의 높이는 지형에 따라 약 1.5~3m로 축조된 토석 혼축성이다. 성안에 우물 3군데, 군창지가 현존하며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으며 동북쪽은 예천읍 서악산에 남쪽은 의성군 다인면 소이산에 북쪽은 문경시 산양면의 소산(所山)에 접해 있다.
산택 연꽃공원
소재지 : 용궁면 산택리 95-10(34번 국도변)
산택연꽃공원은 7~8월에 자생꽃이 피어나는 연못이랍니다.
34번 국도를 따라 안동에서 문경으로 가는 국도 바로 옆에 위치한 덕분에 길손들의 좋은 쉼터로 사랑 받고 있답니다.
팔각정자 뿐만 아니라 각종 편의시설과 휴양시설이 준비되어 있어 가족나들이 장소로 좋으며 연인과의 데이트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여름소풍으로도 굉장히 낭만적인 곳이에요.
지나가는 길에 쉬었다 가세요.
좋은 느낌 가득 안고 가실 수 있답니다. 또 오셔요~
용궁향교
소재지 : 용궁면 향석리 266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0호
이 향교는 옛 용궁현의 뛰어난 인재를 모아서 학문을 강론하고 연구키 위해 세워진 교육기관이다.
조선 태조(太祖) 7년(1398) 현 위치에서 동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처음 세워졌으며, 정종(定宗) 2년(1400)에 불타 없어졌던 것을 중종(中宗) 7년(1512) 이 곳에 복원했으나 선조(宣祖) 25년(1592)에 다시 불타 버렸다.
그 후 선조 36년(1603)에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을, 인조(仁祖) 14년(1636)에 세심루(洗心樓)를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원래 명륜당 앞에는 동·서재가 있었으나 동재만 남아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향교에는 공문 5성위를 비롯하여 송4현 및 국내 18현 등 27위의 성현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봄. 가을에 식전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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