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들바위 · 건들바우 · 삿갓바위
똑딱일시 : 2012년 5월 31일, 오후.
똑딱위치 : 대구 중구 봉산동 215번지
건들바위 · 건들바우 · 삿갓바위(글 : 대구시청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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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들바위는 바위 이름이면서 봉산동의 자연부락이다. ‘건들바위’를 ‘건들바우’ 또는 ‘삿갓바위’라고도 한다. 이는 중구 봉산동 251번지에 있는 무당들이 자주 찾는 큰 바위이다. 예전에는 신천이 용두산에서 수도산 동쪽을 거쳐 건들바위에서 물굽이를 만들고 다시 연구산, 적십자병원 앞, 신명학교 밑, 달성공원, 달서천으로 흘렀다. 신천은 조선 정조 1년(1776)에 대구판관 이서(李敍)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그 이전에는 배나무샘(梨泉)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미나리꽝을 만들어 미나리를 생산하기도 했다. 건들바위는 무당과 점쟁이로 성행했고 아이 못 낳는 부인이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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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동 251번지에 있는 큰 바위다. 예전에는 신천이 용두산에서 수도산 동쪽을 거쳐 건들바위에서 물굽이를 만들고 다시 연구산, 적십자병원 앞, 신명학교 밑, 달성공원, 달서천으로 향했다 한다. 신천은 조선 정조 1년(1776)에 대구판관 이서(李敍)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그 이전에는 배나무샘(梨泉)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미나리꽝을 만들어 미나리를 생산하기도 했다. 건들바위는 무당과 점쟁이로 성행했고 아이 못 낳는 부인이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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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직할시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된 건들바위는 그 소재지가 대구직할시 중구 대봉동인데 봉산시장에서 수도산으로 뚫린 신작로 중간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도로를 곧게 내려고 했으나 이 건들바위 때문에 도로가 좌측으로 굽었다고 한다.
건들바위는 어느 때부터 생긴 이름인지는 오랫동안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표지판에도 그 유래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예로부터 갓을 쓴 노인 같다고 하여 입암(笠巖) 혹은 삿갓바위라고도 불러 왔다고 한다.
지금의 신천 도랑이 원래는 이 곳 수도산을 끼고 제일여상 쪽으로 하여 반월당을 지나 달서천으로 흘렀다. 즉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바위 앞에는 맑고 깊은 냇물이 흘러 낚시를 하며 즐겼던 경치 좋은 명소로 알려져 왔었다. 건들바위 앞에 놓인 표지판에는 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대구 십경(十景) 중의 하나로써 서거정(徐居正 1420~1488)선생의 입암조어(笠巖釣魚)의 시제(詩題)가 바로 이곳을 두고 읊었던 것이다. 한편 근세에 이르기까지 기이하게 생긴 이 바위에 점장이와 무당들이 몰려와 지성을 드렸는데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한 부인들이 치성을 드리러 많이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에도 초사흘, 초이레가 되면 촛불을 켜고 비는 부인들이 많아, 이 날만 되면 촛불을 켤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제보자의 얘기로는 실제로 건들바위에 빌어 아기를 낳았다는 사람들 몇 명 만나 보았다고 한다. 또한 동화사 갓바위도 아기를 가지게 하는 것은 용하다는 사실과 이 건들바위를 관련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무속적인 신앙이 이처럼 시내 한가운데서도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 건들바위는 많이 마멸된 듯하고 또 뒷면에는 바위 벼랑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그 위에는 고가가 한 채 위치하고 있었지만 접근할 수가 없었다. 건들바위 중간에 솟아 오른 나무 한 그루가 세월의 흐름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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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봉산동 215번지에 길 서편에 있는 큰 바위를 건들바위라 부르는데, 바위모앙이 마치 삿갓 쓴 늙은이 같다 해서 삿갓바위(笠巖, 입암)이라 부르고 이 바위에는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정성껏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 전한다.
지금의 신천은 대구 시가지 동북부를 흐르지만 원래는 용두산에서 수도산 동쪽을 스쳐 건들바위 그리고, 연구산, 적십자 병인 앞, 신명학교, 달성공원(達成公園) 앞, 달서천으로 흘렀으나 1776년 조선왕조 정조1년에 대구 판관으로 부임한 이서(李?)란 사람이 1778년 사재를 털어 축제 공사를 완성시킴으로써 새로 생긴 내를 "새내(신천)" 라 부르고 예로부터 흐르던 곳을 "구내"라 불렀다 하며 신천이 생기기 전에는 약 30년 전까지 수도산 동쪽에서 건들바위 일대까지 배나무샘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미나리꽝을 만들어 대구 시민에게 미나리를 제공하였다. 현재는 주택지가 되어있다.
입암에서의 낚시 (笠巖釣魚)
이슬비 자욱이 가을을 적시는데 (烟雨空?澤國秋)
낚시 드리우니 생각은 하염없네 (垂綸獨坐思悠悠)
잔챙이 고기야 적잖게 잡았지만 (纖鱗餌下知多少)
금자라 낚지 못해 자리 뜨지 못하겠네 (不釣金驚鉤不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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