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 회룡포, 사라져가는 눈부신 풍경
전국이 4대강 사업으로 공사판이다. 도심에서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 강은 '관념산수'로서 식수원에 지나지 않는 곳이지만 강 근처에 살거나 고향이 강가 마을이라면 강은 '진경산수'로서 생활의 일부이거나 생존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4대 강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물론 4대강 사업으로 큰 강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특히나 유량이 적은 하천은 조금만 유속이나 지반 환경이 변해도 사라져 버릴 가능성이 많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곳은 대부분 경치가 좋거나 생태환경이 잘 남아 있어 더욱 안타까운 곳이다.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경북과 경남의 절경지를 꼽아 4월(경북 예천)과 5월(창녕 개비리길) 차례씩 다녀본다.
시대의 마지막 주막 '삼강주막'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1번지. 옛 영남대로의 낙동강 마지막 나루가 있던 곳이다. 낙동강과 금천, 내성천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삼강(三江)이라고 이름 붙은 이곳은 팔공산, 학가산, 주흘산 지맥이 맞닿아 삼산삼수(三山三水)의 고장이다. 낙동강 하류에서 배에 실려 온 짐은 이곳부터 보부상의 등짝에 실린다. 짐이 오기까지 보부상이 숙식을 해결하던 주막 하나가 지금껏 전해오고 있다. 보부상이 떠난 자리는 당연히 힘들고 지친 사공이 차지했을 터.
이름하여 삼강주막인데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00년에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주막에 현판처럼 걸린 옛 사진을 보면 새마을 운동의 초가집 개량 사업을 거친 듯하다. 현재의 주막은 2007년에 복원되었다. 70년 가까이 나그네를 거두며 주막을 지켰던 마지막 주모 류옥련 할머니를 끝으로 주막의 계보가 끊어지자 옆 삼강마을 주민 가운데 70대 할머니가 뽑혀 대를 잇고 있다. 그래도 주방에는 셈을 할 줄 모르는 주모가 주전자가 나갈 때마다 빗금으로 표시해 놓은 재래식 외상 장부가 벽화처럼 남아 있다.
경북 예천 회룡포, 사라져가는 눈부신 풍경
삼강주막에 앉아 식사중인 관람객.
나루터도 배도 이제는 사라졌지만 주막만은 현대식 철근다리 옆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니 유지한다는 표현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금은 주막 앞 주차장이 빈 곳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찬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주막 구경도 식후경이다. 우선 주막 마루에 털썩 주저 앉는다. '주모 한 상'하고 외쳐 본다. 주막에서 나오는 주안상에는 일괄적으로 따뜻한 두부 한 모, 도토리묵 한 모, 배추전, 동동주가 전부다. 한 상에 1만 2000원을 받는다. 다른 지역에서 왔다면 배추전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배추에 밀가루를 묻혀 구운 배추전은 경북 북부 산간 주민의 가난한 삶에서 비롯된 음식으로 추정된다. 조리는 간단하나 쓰임새가 다양해 집안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경북의 배추가 상대적으로 물기가 적기 때문에 생긴 음식이라나.
기분 좋은 셀프 주막
술상과 별도로 칼국수(3000원)를 곁들여 식사를 해결한다. 칼국수에도 배추가 빠지지 않는다. 간장양념장으로 간을 하지 않는다면 담백하기 그지없는 절간 음식이다.
단체손님 예약은 이내 싱거운 흥분으로 끝난다. 주막 사정이 예약을 받고 차리는 현대식 주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차려진 주안상을 기대했다간 실망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주방에 상을 직접 가지러 가야 하는 주막이다. '볼일' 끝낸 상을 다시 주방으로 옮기는 것도 손님 몫이다. 일반 식당에서야 생각도 할 수 없는 불친절이고 불편이지만 이곳에선 추억이 된다. 모두 그렇게 믿고 먹는다. 일부는 주막 아주머니의 일을 돕는다. 쌀을 찌는 일, 떡을 치는 일이 체험이나 추억이란 미명하에 스스로 나선 손님의 몫이 되곤 한다.
삼강주막 옆 공사 현장.
배가 부르면 삼강주막 뒤 언덕에 걸터앉아 옛 나루터를 떠올린다. 이내 주위가 시끄럽다. 먼지 방지를 위한 살수차가 지나가고 이내 덤프트럭이 뒤따른다. 멀리서 대형 굴착기가 쉬지도 않고 흙을 퍼 나르고 있다.
풍전등화 회룡포
강의 절경은 회룡포에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삼강주막에서 16km 떨어진 회룡포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한 바퀴 휘도는 절경을 보여준다. 빼어난 경치는 이름도 예쁜 이곳 물돌이 마을의 자랑이다.
섬인지 육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자연의 조화도 이제 바람 앞의 등불이다. 경북 영주댐이 건설되면 이곳은 존재의 위협을 받을 곳으로 꼽힌다.
정부는 '낙동강 제1경'으로 꼽히는 경북 상주시 경천대 백사장이 완전히 없어지는 반면 예천의 회룡포 백사장은 온존한다고 발표했지만 물깊이가 발목에도 오지 않는 이곳 모래톱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이상하다.
용궁면 회룡포 전경.
모래사장에는 이미 관광객들이 알록달록 모래알처럼 서 있다. 주차장에서 모래톱을 가로지르면 뿅뿅다리(뿅뿅 구멍 뚫린 철판다리의 애칭)가 나온다. 뿅뿅다리를 건너 마을을 한 바퀴 돌면 내성천이 휘감은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곳곳에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지천에 널린 쑥을 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의 머릿속에는 벌써 저녁 밥상 앞으로 가 있는 듯 연거푸 입맛을 다신다.
나무를 보았다면 이제 숲을 볼 차례. 회룡포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올라본다.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원산성 등산코스가 있다. 제1전망대인 회룡대와 제2전망대인 용포대까지 오르면 사진만으로 보던 회룡포가 한 시야에 들어온다.
연방 감탄사를 내뱉는 아주머니 둘. "4대강 사업이 끝나면 다시 못 볼 풍경일 수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아주머니들은 "그럼 4대강 사업은 왜 하노?"하고 되묻지만 멋쩍은 웃음밖에 드릴 답이 없다.
출처 :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14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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