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대학자 전원발, 벗들과 유유자적 하던 곳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경북의 재발견 - 50. 예천 무이리 청원정

예천 용궁면에는 내성천, 금천, 기천이 3면을 둘러서 흐른다고 하여 무레실(무이리)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고려말 대학자 국파(菊坡) 전원발(全元發)이 벼슬에서 물러나 산수를 즐겼던 곳으로, 국파선생이 지었다는 청원정이 강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예천군청 이재완 학예연구사와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에 위치한 청원정(경상북도지정 문화재자료 제533호)에 대해 알아본다.
이재완 학예연구사는 소개에 앞서 이 마을은 옛날 백씨들이 살던 마을인데 황해 관찰사를 지낸 백운양이 이곳에 은거하다가 임진왜란을 만나자 우연히 일어나 출전하면서 "내가 이 싸움에서 왜놈을 무찔러 이기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요. 내가 죽으면 이 나무도 말라 버릴 것이다"라고 가족들에게 이르고 나간 뒤로 그가 상처를 입은 채 돌아오다가 마을 앞에서 죽었으므로 그 자리에 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또한 백운양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매 의관과 유품으로 마을 앞산에 묘를 만들고부터 그 산을 백장군산이라 부르고 마주목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어, 충신의 마을로도 유명하다고 했다.
이 마을 출신인 고려의 충신이자 학자로 널리 알려진 전원발은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전원발(全元發)은 용궁면 무이리 소천(蘇川) 마을 출신으로, 호는 국파(菊坡), 본관은 용궁(竺山), 아버지는 전진(全璡)이다.
1315년(충숙왕 2)에 원나라에 가서 고려의 인재를 뽑는 문과에 장원해 원나라에서 병부상서와 집현전 태학사를 겸직했다.
전원발은 황제를 자주 찾아가 고려는 바다 건너의 작은 나라로 원나라에 바치는 세공이 너무 많아 폐단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귀국할 때도 원나라 황제 순제를 만나 하직하면서 "고려로부터 거두는 세공을 대폭 줄여주십시오"라고 했다. 순제는 전원발의 애국심에 감탄하여 이를 허락하고, 옷 한 벌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그 후 귀국한 전원발은 1354년 축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조선이 건국된 후 명나라에서도 세공을 적게 받았으며 태조 이성계는 전원발의 이 같은 공을 치하해 다시 축산부원군에 봉하였다.
전원발은 조선에서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 성화천(省火川)의 맑은 물이 굽이치는 강 동쪽 언덕에 청원정을 세우고, 이곳에서 김득배(金得培), 이제현(李齊賢), 김구용(金九容) 등과 함께 노후를 보냈다.
특히 김득배가 시를 보내온 것에 대한 화답 시에 이어서 짓기를 "강물이 넓으니 물고기가 자유롭고, 숲이 깊으니 지친 새가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옴은 나의 뜻이요. 부귀의 위태로운 기미를 일찍 안 건 아니어라"고 했다.
전원발은 글씨에도 뛰어나 필적이 남아 있는데, 보은 법주사에 있는 '자정국존보명탑비(慈淨國尊普明塔碑)'의 비문이 그것이다.
무덤은 문경군 영순면 오룡리 사현 분퇴동(沙峴分退洞)에 있고, 소천에 '국파 전 선생 유허(菊坡全先生遺虛)'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다.
1698년(숙종 24)에 임금이 이르길 "전원발은 중국에 들어가서 여러 번 우리나라 세공의 폐됨을 아뢰어 지금 편안하게 되었음을 잊지 못하겠으니 그가 쉬던 성화천을 소천으로 고치라"고 명 했으며 그는 1701년 이곳 소천서원에 제향됐다.
국파(菊坡) 전원발(全元發)이 강론하던 청원정(淸遠亭)은 소천마을 북서쪽 금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창건연대는 조선 초기로 전해지고 있으며 퇴계의 시와 김소락의 중수기 등이 남아 있으며 세월이 흘러 훼손된 것을 1918년에 중건했다.
이 정자에는 고려 말기의 학자인 척약재, 김구용(1338~1384)가 쓴 '청원정'이라는 글씨가 정자 옆 암벽에 음각되어 있어 이를 청원정의 창건 근거로 보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一자형 평면의 팔작지붕집이다. 1칸 규모의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측에 마루방을 각각 1칸씩 두고 전면에 툇마루를 설치했다. 온돌 양 협칸에 마루를 둔 보기 드문 평면 형식으로 정자건축에서 건축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청원정에 보존되어 있는 청원정중수기, 청원정중수상량문, 퇴계 이황의 시문, 성화천 동안의 금석문(청원정, 국파전선생) 등은 당시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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