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용기자의 노거수이야기 .64] 예천군 풍양면 청곡리 회화나무
옆에 있는 정자와 어떤 사연 있기에…
'삼수정' 정자가 병자호란때 무너졌어…
그런데 옆에 있던 회화나무 세그루도 따라 죽더라고…
나중에 정자 다시 세웠더니 신기하게 죽었던 나무에 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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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출발하면서 눈이 내릴 날씨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였다.
의성 안계를 지나 예천으로 가는 도중에 함박눈이 내렸다. 도로는 금세 하얀 눈으로 뒤덮였고 미처 체인을 준비하지 못한 차들이 도로를 엉금엉금 기었다. 카센터에서 체인을 별도로 장만한 뒤 목적지인 예천군 풍양면 청곡리를 찾았다. 오늘의 주인공 회화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회화나무는 청곡리 마을 뒤편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를 잡은 삼수정(三樹亭, 경북문화재자료 제486호) 앞에 서 있다. 나무 옆에는 세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그 중 한 그루는 보호수로 지정될 만큼 생긴 모습이 아름답다. 회화나무 가지에도 눈꽃이 피었다. 고목(古木)에 눈꽃이 피니 더욱 신령스럽게 느껴졌다.
누가 회화나무를 심었을까.
안내를 해준 정재원 어르신(82)은 "본인의 선조(先祖)로 충남 홍성 결성현감을 지낸 정귀령께서 1425년에 삼수정을 세우고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정자 이름을 따 호(號) 역시 삼수정이라 했다"고 알려줬다.
굳이 회화나무를 심은 이유가 궁금했다. '학자수(學者樹)'라 칭하는 회화나무는 중국 주나라때 최고위 대신인 삼공(三公·태사, 태부, 태보)이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향해 앉았다고 전해지면서 회화나무는 높은 벼슬, 훌륭한 학자를 상징하게 됐다. 삼수정도 자손들이 훌륭하게 자라 나라의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회화나무가 한 그루만 남았다. 두 그루의 행방이 궁금했다. 정 어르신은 "병자호란때 삼수정이 무너지면서 세 그루의 회화나무도 시들어 죽었다. 나중에 정자를 다시 세우자 신기하게도 죽은 세 그루의 회화나무 가운데 한 그루에서 움이 돋아 자란 게 현재의 이 회화나무"라는 이야기를 들려 줬다. 이야기를 듣자 왠지 삼수정과 회화나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수정 앞 안내간판에 따르면 삼수정에서 열린 정귀령의 80세 생신 때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관복을 벗어 이 세 나무에 걸어 놓으니 울긋불긋 오색꽃이 핀 듯하여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나무에 담긴 이야기를 들은 후 주의깊게 나무를 살펴봤다. 잎이 떨어지고 맨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회화나무는 줄기에 커다란 외과수술 자국이 있지만 땅을 굳건하게 디딘 채 당당하게 서 있다.
예천군 자료에 따르면 수령은 300여 년, 높이는 15m. 직접 재어본 가슴높이 나무둘레는 4.21m이다.
청곡리 정광준 이장에 따르면 "외과수술 전에는 회화나무 줄기 속이 비어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때 숨기도 했다. 외과수술 후 줄기가 오므라들어 현재의 모습이 됐다"고 했다. 정 이장은 "옛날에 단오가 되면 소나무에 맨 그네는 어른들이 탔고, 회화나무에 맨 그네는 아이들이 타고 놀았다. 회화나무 아래에서 봄에는 화전놀이를 하고, 여름에는 그늘에 모여 놀거나 잠을 자기도 했다"며 옛 추억을 떠올리듯 나무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후손들을 생각하며 나무 한 그루도 아무렇게나 심지 않았던 선조들의 자상한 배려를 엿본 이번 여행길.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교훈의 의미를 새삼 되새긴다. 선조들의 마음이 눈 덮인 산천 만큼이나 영롱하다.
출처 : http://www.yeongnam.com/yeongnam/html/weekly/life/article.shtml?id=20101224.010420808570001
예천 회화나무
영상 : http://www.yeongnam.co.kr/yeongnam/html/yeongnamdaily/yvision/article.shtml?id=20101224.0100709205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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