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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자라바위) - 대구 제일중학교

한 글 2012. 6. 10. 14:09

 

 

거북바위(자라바위)


똑딱일시 :  2012년 6월 10일 오전.
똑딱위치 :  대구 중구 명륜로23길 16(봉산동 230-1), 제일중학교

참      고 :  대구 중구, 비지정 문화재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옛날 대구시 전역에는 나지막한 산들이 곳곳에 솟아 있었다. 그중 연귀산은 대구를 지켜주는 진산(鎭山)으로 지금 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대구향교 남쪽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제일중 교정이 바로 그곳이다. 현재 제일중 교정 한구석에는 특이한 바위가 남아있어 연구산(連龜山 )의 유래를 전해 주고 있다. 윗부분이 거북등처럼 떡떡 갈라진 이 바위는 일명 거북바위로 여러가지 유래가 정해진다.

 

옛날 대구에는 불이 자주 나 불과 상극인 물에 사는 거북을 상징하는 바위를 두었더니 그후로는 정말 불이 나지 않았다는 설, 옛 무덤인 고인돌의 일종이라는 설 등이 있으며, '연구산' 이라는 지명에 얽힌 전설은 기록상으로 남아 있다.

 

경상도 각 고을의 연혁과 풍물을 소개한 『경상도 지리지 대구편』에는 연구산과 거북바위에 관한 기록을 소상히 전 하고 있다. 즉, 이 산에 돌로 거북을 만들어 머리를 남쪽, 꼬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해 비슬산에서 뻗어오는 지맥을 통하게 했다. 그리고, 이 산을 이을연(連), 거북구(龜)로 하여 연구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연구산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선 곳에는 아미산이 있었다. 적십자 병원에서 반월당 네거리에 이르는 곳에 언덕을 이루었던 이 산은 여인의 눈썹처럼 생겼다고 해 아미산(娥眉山)이라 불렀다.옛날 이 일대에는 무과시험을 관장했던 관덕정이 있었으며, 무사들이 무예를 닦던 연변장이 있었다. 또 아미산 에는 국법을 어긴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장이 있었던 곳으로, 경상도 지역 천주교 순교자들이 무고한 생명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대구대교구는 가톨릭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관덕정 순교기념관을 건립해 순교자들의 뜻을 높이 받들었다.

 

아미산
반월당에 위치한 적십자병원 뒤편의 언덕은 아미산이라고 불렀다. 이곳이 아미산이라고 불린 이유는 두가지를 꼽을 수 있다. 아미라 함은 미인의 눈썹을 의미하는데, 경상감영에서는 남쪽산을 보면 야트막한 언덕이 미인의 눈썹을 닮았다하여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구의 명산 아미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아미현에 있던 산으로 보현보살이 발현한다하여 영험한 산으로 이름나 있었다. 이 근거로는 남산동 언덕에 자리 잡은 보현사를 들 수있다.


자라바우 마을

자라바우는 봉산동의 자연부락이다. 자라처럼 생긴 바위 이름이면서 그 주위의 부락을 ‘자라바우 마을’이라고 부르면서 봉산동의 자연부락으로 통하기도 한다. 자라바우는 표준어를 익힌 현대인에게는 자라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중구 봉산동 제일여중 뒷산을 자라바위산이라 부르는데 이산에 자라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길이 약 2m, 폭 1.5m, 높이 0.8m가량의 이 바위는 윗부분에 커다란 줄홈이 가로, 세로  파여져 있어 거북등을  연상시키는 데다 바위 전체의 모습이 자라가 엎드린 형상을 한 데서 자라바위란 이름을 붙은 것이다. 자라바우는 지금은 마을로 변했지만 제일여중 뒤쪽에는 산이었고 신명여고 입구로 옮겨 간 구암서원과 함께 제일여중 뒷산에 있었다. 자라바우는 지금은 제일여중 본관 앞의 화단 안 국기게양대 옆으로 옮겨져 있다. 조선시대 대구가 낳은 큰 학자 서거정(徐居正) 선생이 쓴 “거북산 봄 구름”이란 시 속에 거북산은 바로 이 자라바우산을 가리킨다. 시조 시인 노산 이은상씨는 서거정 선생의 “거북산 봄 구름”이란 한시를 현대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돌에 새겨 자라바우를 읊고 있다. 
제일여중 뒤 산은 일제(日帝) 때 정오를 알리기 위해 오포(午砲)를  쏘았기 때문에 ‘오포산’이라고도 했다.


<자라바위의 전설>

 옛날 이 고장은 화산지대였다고 하는데 비슬산을 비롯하여 용두산, 수도산, 자라바위산 등에 모두 화맥이 뻗혀 있어 불이 자주나 피해가 많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 지방 사람들의 인심이 흉흉하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 때문에 사람들이 공포에 시달렸다 한다. 어느 시대 이곳에 부임한 고을 현감이 불을 막기 위한 방범을 주야로 생각하다 물로써 화기를 억눌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용두산에 얼음창고[석빙고]를 만들고 또 물을 상징하는 자라를 마을 가까운 산에 놓아두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고을 현감은 자라모양으로 바위를 깎아 둘까도 생각했으나 그것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자라가 좋을 것이라 생각하여 여러 날을 다녔더니 과연 자라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어 그것을 옮겼더니 그 영험인지 그 뒤로는 큰불이 나지 않았다 한다. (글 : 대구 중구청 및 대구시청)
 


     거북산의 봄구름                             (龜峀春雲)

 

거북뫼 아득하여 자라 산 닮았고              (龜岑隱隱似驚岑)
 구름 토해냄이 무심한 듯 유심한 것이       (雲出無心亦崙心)
 온 땅의 백성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大地生靈方有望)
 가뭄에 단비 만들어 주려 함이네.            (可能無意作甘霖)